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헐크 호건 (문단 편집) === 본격적인 WWF/WWE 활동 시작 === 이후 북미 [[AWA]]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중 그 재능을 간파한 [[빈스 맥마흔]]이 [[WWE|WWF]]의 주연으로 발탁했다.[* 이때가 1983년인데 바로 WWF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고 이후에도 일본 무대에는 1985년까지 참전을 지속했다.] 이때 빈스 맥마흔은 측근에게 '''“난 이제 세계를 차지하게 될거야.”'''라고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Sex, Lies, and Headlocks에서][* 당시 AWA에서 인기가 좋았으나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대받던 헐크 호건은 [[록키 3]]에 나오면서 인지도를 더 높였는데, 안 그래도 악명높은 [[일 중독|워커홀릭]]이라 영화를 잘 안 보는 빈스가 그걸 본 뒤 분명 대중이 호건을 알아볼 것이라 여겨서 영입했다고 한다.][* 당시엔 WWE의 선역이자 챔피언은 [[밥 백런드]]였는데 그는 너무 깨끗하고 번듯한 선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결정적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모범생적인 선역에 이제 식상함을 느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질 못하게 되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빈스 맥맨은 밥 백런드를 내려오게 하고 그를 대신할 새로운 이미지의 영웅으로 헐크 호건을 점찍었다. 그는 전설의 레슬러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같은 파워에다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화려한 이미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에 빈스가 찾던 아주 이상적인 선수였다.][* 사실 밥 백런드는 인기는 높았지만 외모만 놓고 보면 안짱다리에 키도 별로 크지 않고 근육질도 아닌 전형적인 개성없는 아마추어 레슬러 타입의 신체였다. 그에 비해 헐크는 겉모습만 봐도 삐까뻔쩍하다고 할 정도로 외모에서 차이가 엄청났다.] WWE에서의 첫 챔피언 커리어는 1984년[* 정확하게는 1984년 1월 23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아이언 쉬크]]를 이기면서 시작하는데, 당시 아이언 쉬크의 피니시인 [[카멜 클러치]]는 '''한 번도 깨지지 않은 피니시'''였다[* 참고로 아이언 쉬크는 1983년 12월 26일 당시 WWF 챔피언이던 밥 백런드를 이기고 챔피언에 오른 지 1년도 안된 때였다.]. 전설의 시작답게 카멜 클러치를 풀어내고 [[레그드랍]]으로 승리를 거두며 전설의 시작을 알린다. [[https://youtu.be/4u09Vf2X-Vo|Hulk]] [[https://youtu.be/v913AoNmDGQ|Hogan]] [[https://youtu.be/opzv_ET0u7E|"Real]] [[https://youtu.be/wjgoi9-ETVY|American"]] 그 후 WWF는 ‘리얼 아메리칸’이란 컨셉으로 호건을 [[미국]]의 수호자, 미국의 영웅으로 놓고 [[이라크]], [[서아시아]], [[일본]], [[대한민국]][* 1984년 Tiger Chung Lee라는 재일 한국인(한국명 김덕) 레슬러와 경기를 해서 이겼다. 물론 재일이었긴 하지만 경기 당시 콜사인으로는 확실히 '''[[서울특별시|서울]], [[대한민국|사우스 코리아]]'''라고 소개되었다. 이 당시 김덕의 기믹은 악역 일본인 레슬러였던 [[미스터 푸지]]의 한국인 무술가 친구(...)라 김덕도 당연히 악역이었다. 이 당시 둘이 같이 태그팀으로 경기를 할 때 미스터 푸지가 [[욱일기]]를 들고 나오는 등 한국인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어이없을 기믹이긴 하지만, [[앙드레 더 자이언트]], 뱀 뱀 비글로, [[밥 백런드]], [[테리 펑크]]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던 선수인건 확실하다...] 등 전 세계의 [[거인]], [[초인]]들이 미국에 와서 깽판을 치면 호건이 박살을 내놓는 다소 유치하면서도 [[국수주의]]적인 스토리라인을 전개했다.[* 호건의 첫 WWF 챔피언 획득이 1984년 1월에 있었던 이란출신 [[아이언 쉬크]]와의 대결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아이언 쉬크와 그의 매니저가 후에 [[이라크군]]으로 분장한 변절자 기믹의 [[서전 슬로터]]와 함께 제네랄 아난 그리고 [[무스타파]] 대령 기믹으로 다시 등장한다. 일본 쪽 기믹은 [[요코주나]]. 이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대한민국|한국]]의 [[김일(프로레슬러)|김일]]도 똑같았지만 (사실 일본의 [[국수주의]] 기믹의 원조는 그들의 스승인 [[역도산]]이었다.) 헐크 호건은 그야말로 세계구였다.] 하지만 시대를 잘 탔던 각본에 호건의 강력한 파워, 관중의 반응에 호쾌하게 응해주는 카리스마 등이 더해지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거기다 호건은 영화, TV쇼 등에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끼를 발산한 레슬러였으며 결국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지 않는 층에도 어필하며 프로레슬링 자체를 세계에 알린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호건의 인기를 입증해 주는 예를 들자면, WWE 최고의 이벤트인 ‘[[레슬매니아]]’의 이름의 유래는 레슬 + 헐크 매니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탄생 유래 자체가 호건을 위한 대회였다.[* [[비틀즈]]의 매니아 = 비틀매니아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다만 여러가지로 명승부를 많이 남긴 레슬러라곤 해도 아무래도 필승 각본을 따라가는 궁극 선역 레슬러이다 보니 좀 사기성이 강한 데다가 경기가 지나치게 원패턴인 것이 헐크까들에게 주공격 대상이다. 일단 1980년대의 중요한 시합에선 거의 필승하였고, 어떤 반칙에도 쓰러지지 않고, 탭아웃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NEVER GIVE UP!”의 시초이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헐크업으로 부활하여 '''삿대질→[[해머링]] 3방→[[로프반동]] [[빅 붓]]→아토믹 [[레그드랍]]''' 콤보로 상대방을 박살낸다.[* 헐크 호건의 전성기 시절에 이 콤보를 씹어낸 레슬러는 [[얼티밋 워리어]], [[사이코 시드|시드 저스티스]], [[요코주나]] 단 3명뿐인데 이 중 시드 저스티스는 각본과 실제 시합 사이의 오류로 어쩔 수 없이 각본을 씹은 것이고 요코주나의 경우 헐크 호건의 WCW 이적 전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즉, 제대로 씹은 것은 얼티밋 워리어 한 명뿐이다. 또한 보통 기술이 들어가고 나서 씹어낸 적은 거의 없다. 보통 기술을 피하고 기습적인 핀을 하여 3카운트와 어깨를 드는 순간이 아주 아슬 아슬하게 거의 일치해서 빼앗기는 등 그 지더라도 그 위상을 보완할 정도였다. ] 그럼 관객은 즐기면 된다. WWE에서 이후 [[존 시나]]가 맡은 역할을 헐크 호건이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적 선역 기믹]]의 시초로 보는 사람도 많다. 또한 세그먼트 때는 항상 어린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잘하고, 비타민을 꼭 챙겨 먹어라 형제들이여!”'''를 말하며 아이들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함없는 단조로운 원패턴 레슬링은 당대에도 까인 적이 많았고, 최악의 선역으로 헐크 호건이 종종 뽑히기도 했다.[* 존 시나가 무적 선역 기믹으로 인해 국내에선 ‘존나세’라는 별명이 있고 해외에선 “John Cena Sucks”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건은 모든걸 상쇄할 만한 '''카리스마'''와 '''압도적 인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불패의 레슬러는 아니었고, [[WWF 레슬매니아 VI|WWF 레슬매니아 6]]에선 최고의 명승부라는 [[얼티밋 워리어]]와의 시합에서 패해 WWF 타이틀을 잃었으나 선역답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워리어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에지(프로레슬러)|에지]]가 이 경기를 보고 레슬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지는 2002년에 자신의 우상인 호건과 WWE 태그팀 챔피언을 지내기도 한다.] 허나 이후 워리어가 챔피언으로서 WWF가 예상한 만큼 성공하지 못하자 불과 1년 후 흥행 보증수표인 호건을 다시 [[WWE 챔피언십|WWF 챔피언]]으로 올리기도 했다.[* 물론 [[얼티밋 워리어]]의 재능과 인기가 헐크 호건에 못미치는 것도 있지만 호건은 다양한 적과 상대하면서 여러 경기를 가졌는데 워리어는 헐크 호건과 가진 상대보다 낮은 위치의 선수를 상대하거나 한번 호건과 상대한 선수를 호건 다음에 PPV도 아닌 하우스 쇼에서 상대하는 등(다들 섬머슬램에서 헐크 호건 VS [[어스퀘이크(프로레슬러)|어스퀘이크]]의 경기는 알아도 워리어 VS 어스퀘이크 경기는 모를 것이다. 워리어 역시 하우스 쇼에서 어스퀘이크를 들어올렸는데도 말이다!) 챔피언에 올랐으면서도 호건에 비해 못한 대접을 받은 것도 있다.] 그러나 WWF의 여러 프로그램들 자체가 식상해지면서 호건의 캐릭터 역시 진부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빈스는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게 되고, 마침 그 즈음 있었던 스테로이드 파동까지 겹치는 바람에 호건을 비롯한 1980년대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되는 반 강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호건은 [[WWF 킹 오브 더 링(1993)]]에서 [[요코주나]]에게 패배한 후 WWF를 떠나 영화나 TV쇼 등에 출연하면서 연예계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